여자와 철학교수를 증오하다-쇼펜하우어(1)
재미있는 철학이야기(제50화)
영암일보입력 : 2025. 04. 04(금) 09:44

▲강성률 철학박사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1788년~1860년)는 헤겔의 강의 시간대에 자신의 강의를 개설하였다가 오히려 청강생이 헤겔에로 몰리는 바람에 한 학기 만에 대학교 강의를 포기하고 말았다. 헤겔에 대한 지나친 경쟁 의식이 초래한 비극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실패를 자기 자신의 탓이 아니라 밤에는 늑대로 변하는, 다른 철학교수들의 그릇된 미움과 지나친 시기심 탓으로 돌렸다. 물론 동료들은 그를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해 도대체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쇼펜하우어는 그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의심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으며, 불이 날까 봐 2층에서 자지도 않았다. 또 잠잘 때에는 권총에 탄환을 넣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 누군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그는 폭력을 휘둘렀다. 언젠가는 바느질하는 어떤 얌전한 여자가 수다를 떨어 그를 방해했다며,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평생 불구로 지내게 되었고, 쇼펜하우어 자신도 일평생 보상의 의무를 지게 되어 두고두고 자책감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괴로워했다. 또 집의 가장 은밀한 곳에 값 나가는 물건을 숨겨두었다. 금화(金貨)는 잉크병 속에 넣었고, 지폐는 침대 밑에 숨겼다. 그는 출판업자들이 그의 책을 보급시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끊임없이 다투었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애초부터 돈만 보고 결혼을 하였던 어머니는 막대한 유산을 챙긴 다음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그는 이러한 어머니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느껴 그녀와 한바탕 싸우고는 서로 헤어져 살기로 한다. 그리고는 스물 한 살의 성년이 되자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유산의 3분지 1을 받아냈다. 쇼펜하우어는 그 유산을 가지고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그가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그 어머니는 축하하기보다 도리어 비웃기만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영영 헤어졌고,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인지, 쇼펜하우어는 여자를 ‘인간적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자들의 특징이란 미치광이에 가까운 낭비벽과 본능적인 교활함, 그리고 뿌리 뽑기 어려운 거짓말 습관이다. 여자란 어디까지나 ‘하위의 존재’로서 어린이와 남자 사이의 중간 단계에 속해 있다. 그리하여 “성적 충동으로 이성이 흐려진 남자들만이 키가 작고 어깨가 좁으며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짧은 이 여자라는 존재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음악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조형미술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해력이 없다. 만일 그들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남자들의 마음을 끌려는 의도로 꾸민 흉내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여자와 전혀 접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한 여성과 깊이 사귄 적이 있으며, 사창가에서 창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증오하는 두 번째 대상은 철학교수들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그들에게 지독한 독설을 퍼부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주된 목표는 헤겔이었다. 헤겔은 그에게 ‘사기꾼’이자 ‘정신이 썩어빠진 추악한 남자’였으며, 헤겔의 학설은 ‘정신병자의 수다’였다. 피히테의 말 역시 궤변이며, ‘요술쟁이의 주문’일 따름이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이야말로 ‘철학의 숨은 황제’이며, 더 나아가 철학적 종교의 창시자이기까지 하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을 따르는 몇 명의 추종자들을 ‘사도’라거나 ‘복음 사가’라고까지 불렀다.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서는 ‘후대의 평가에 호소한다.’며 태연한 척 했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그럼에도 쇼펜하우어는 그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의심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으며, 불이 날까 봐 2층에서 자지도 않았다. 또 잠잘 때에는 권총에 탄환을 넣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 누군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그는 폭력을 휘둘렀다. 언젠가는 바느질하는 어떤 얌전한 여자가 수다를 떨어 그를 방해했다며,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평생 불구로 지내게 되었고, 쇼펜하우어 자신도 일평생 보상의 의무를 지게 되어 두고두고 자책감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괴로워했다. 또 집의 가장 은밀한 곳에 값 나가는 물건을 숨겨두었다. 금화(金貨)는 잉크병 속에 넣었고, 지폐는 침대 밑에 숨겼다. 그는 출판업자들이 그의 책을 보급시키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끊임없이 다투었다.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애초부터 돈만 보고 결혼을 하였던 어머니는 막대한 유산을 챙긴 다음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 그는 이러한 어머니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느껴 그녀와 한바탕 싸우고는 서로 헤어져 살기로 한다. 그리고는 스물 한 살의 성년이 되자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유산의 3분지 1을 받아냈다. 쇼펜하우어는 그 유산을 가지고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그가 예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그 어머니는 축하하기보다 도리어 비웃기만 했다. 이후 두 사람은 영영 헤어졌고,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인지, 쇼펜하우어는 여자를 ‘인간적 불행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그에 의하면, 여자들의 특징이란 미치광이에 가까운 낭비벽과 본능적인 교활함, 그리고 뿌리 뽑기 어려운 거짓말 습관이다. 여자란 어디까지나 ‘하위의 존재’로서 어린이와 남자 사이의 중간 단계에 속해 있다. 그리하여 “성적 충동으로 이성이 흐려진 남자들만이 키가 작고 어깨가 좁으며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짧은 이 여자라는 존재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음악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조형미술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해력이 없다. 만일 그들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남자들의 마음을 끌려는 의도로 꾸민 흉내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
결국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여자와 전혀 접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한 여성과 깊이 사귄 적이 있으며, 사창가에서 창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증오하는 두 번째 대상은 철학교수들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그들에게 지독한 독설을 퍼부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주된 목표는 헤겔이었다. 헤겔은 그에게 ‘사기꾼’이자 ‘정신이 썩어빠진 추악한 남자’였으며, 헤겔의 학설은 ‘정신병자의 수다’였다. 피히테의 말 역시 궤변이며, ‘요술쟁이의 주문’일 따름이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이야말로 ‘철학의 숨은 황제’이며, 더 나아가 철학적 종교의 창시자이기까지 하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을 따르는 몇 명의 추종자들을 ‘사도’라거나 ‘복음 사가’라고까지 불렀다.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서는 ‘후대의 평가에 호소한다.’며 태연한 척 했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