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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의 형이상학-쇼펜하우어(2)
재미있는 철학이야기(제 51화)
영암일보입력 : 2025. 04. 18(금)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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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철학박사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은 사유나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의지에 있다. 우리의 판단은 논리적 사유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식되지 않은 심층부에서 순간적인 착상이나 결단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우리들의 신체적 행동 역시 의지의 작용에 불과하다. 가령, 걸어가려는 우리의 의지는 발로서 나타나고, 붙들려는 의지는 손으로서, 소화를 시키려는 의지는 위장으로서, 생각하려는 의지는 뇌로서 나타난다.

이 의지란 눈은 밝으나 몸이 불구인 사람을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힘센 맹인(盲人)과 같다. 인간 행동의 실질적인 추진력은 의지이고, 이성은 단지 그 방향을 제시해줄 뿐이다. 그런데 이 무의식적 의지는 휴식 없이도 그 왕성한 활동을 계속한다. 그것은 마치 심장이나 호흡 운동처럼 지칠 줄 모른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행해지는 것은 피곤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보존의 욕구와 종족 보존의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간의 경우에도 일단 자기 보존이 이루어지고 나면, 생식 활동을 통하여 종족을 보존하려 한다. 결국 생물계에서 가장 강렬한 의지의 표현은 생식 본능이다. 인간은 인식의 근거지인 뇌보다도 성충동의 본거지인 생식기로부터 더 강한 충동을 받고 있다. 생식기야말로 의지의 초점이다.

그러고 보면, 흔히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 역시 종족 보존이라고 하는 자연의 유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를 서로 끌어당기게 하는 것은 고상한 인격이 아니라, 종족 본능으로 표출되는 삶의 의지이다. 인간이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없는 것을 사랑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종(種)의 유형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애를 쓰는 것은 그 증거에 다름 아니다. 눈이 작은 사람은 눈 큰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며, 피부가 검은 사람은 그 반대의 경우를 대단한 매력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인간은 언제나 자기에게 결핍된 것을 가진 이성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무조건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연은 남자의 남성다움과 여자의 여성다움이 잘 조화될 때, 그 목적을 원만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포용력과 결단력 등의 남성미와 섬세함과 신중함 등의 여성미가 어우러질 때, 두 남녀는 가장 잘 어울린다. 가장 남성적인 남자는 가장 여성적인 여자를 찾게 마련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모든 개인은 자기도 모르게 이 문제에 그렇게도 큰 비중을 두는 것이다.

정욕이란 원래 종(種)을 위해 가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을 위해 가치 있는 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일종의 망상에 불과하다. 저돌적인 정욕도 일단 종의 목적이 실현되고 나면 즉시 사라진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가임기(可姙期)일 때 최고의 절정에 도달하고, 생식 활동이 끝나면 곧 시들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여자들이 쉬이 아름다움을 잃는 것은 낭비를 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에 속한다. 말하자면, 더 이상 아름다울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종의 의지에 속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아 차린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사람들끼리 막상 결혼하고 나면 급격히 정열이 식는 것처럼, 육체적 욕정이 충족되었을 때 냉정하게 돌아서는 남성은 인간이 결국 종(種)의 도구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사랑의 형이상학’은 쇼팬하우어의 ‘맹목적 의지’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지만, 헤겔의 이성 철학에 대한 반발은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유물론, 키르케고르의 실존주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심층심리학), 그리고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등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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