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의 燈(등)-모든 생명은 등가(等價)다
무아(無我),'나'를 비우면 모든 생명이 '나'
영암일보입력 : 2025. 09. 17(수) 14:46

▲김백호 영암일보 대표이사/법학박사
우주 만물 산하대지에 어떤 존재가 더 귀하고, 어떤 생명이 덜 소중할 수 있을까. 한 송이 들꽃의 피어남과 인간의 숨결은 결코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나뉠 수 없다.
석가세존께서는 “모든 것은 연기하여 존재한다”고 설하셨다.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해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그러하기에 '나'라는 실체도, '너'라는 실체도 따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느 하나 홀로 빛나는 생명은 없다. 숲은 바람에 의지하고, 강은 구름의 눈물에 의지하며, 우리는 서로의 호흡을 나누며 살아간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내면에는 이와같이 평등한 빛이 흐른다. 결국 모든 존재의 본성은 평등하며, 거기에는 차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이 가르침은 단지 깨달음의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세계가 처한 위기 앞에서 더욱 절실한 경종이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과 기아
21세기에도 전쟁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총탄은 무고한 이들을 쓰러뜨리고, 굶주림은 어린아이의 생명을 앗아간다. 영토분쟁, 이념과 종교의 대립, 경제적 이해관계 등으로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피 흘린 자리에 무수한 생명은 쓰러져간다.
그러나 무아의 눈으로 본다면, 적과 아군을 가르는 경계 또한 허망하다. 그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보다 덜 소중하지 않다. "모든 생명은 등가다”라는 자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당연시하거나 외면할 때, 결국 스스로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이다. 그 아이의 굶주림은 내 영혼의 굶주림이고, 그 어머니의 눈물은 내 마음의 눈물이다.
환경파괴와 보이지 않는 죽음
전쟁만이 아니다. 환경파괴라는 이름 없는 전쟁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공장의 연기와 끝없이 버려지는 플라스틱과 산업 폐기물들이 하늘과 바다와 대지를 질식시킨다. 사라지는 숲은 우리의 폐와 같고, 죽어가는 바다는 우리의 혈관과도 같다.
인간이 자연을 소외시키는 순간, 스스로의 근원을 잘라내는 일이 되고 만다. 자연은 타자가 아니다. 숲과 강, 바다와 대지와 바람은 곧 ‘나’이며,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다.
무아, '나'를 비운 그 자리
무아는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나만 소중하고, 나의 집단만 중요하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생명의 등가성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며, 다른 생명을 자신과 똑같은 생명의 벗으로 여길 수 있다.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삶을 지탱하는 공존의 터전으로 바라볼 수 있다.
굶주리는 아이 앞에서 무심할 수 없고, 전쟁의 참상 앞에서 침묵할 수 없으며, 오염된 땅과 강을 보며 방관할 수 없는 마음, 이것이 바로 무아 적 자각의 열매이다.
생명은 서로 기대어 살고,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어느 한 생명의 파괴는 결국 모든 생명의 상실로 이어진다.
오늘의 세계는 위기의 언덕에 서 있다. 그러나 이 위기야말로 무아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임을 말해준다. "모든 생명은 등가(等價)다.” 이 단순한 진리를 각인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중심적 오만에서 벗어나 생명 존중의 지혜로 나아갈 수 있다.
전쟁을 멈추고, 굶주림을 치유하며, 환경을 회복시키는 길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여기는 눈에서 시작된다.
지금 여기에서 무아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한 송이 꽃, 한 마리 새, 한 아이의 웃음이 모두 등가 (等價)의 빛을 품고 있음을. 그 빛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의 삶 또한 지혜와 자유로 빛나게 될 것이다.
석가세존께서는 “모든 것은 연기하여 존재한다”고 설하셨다.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해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그러하기에 '나'라는 실체도, '너'라는 실체도 따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어느 하나 홀로 빛나는 생명은 없다. 숲은 바람에 의지하고, 강은 구름의 눈물에 의지하며, 우리는 서로의 호흡을 나누며 살아간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내면에는 이와같이 평등한 빛이 흐른다. 결국 모든 존재의 본성은 평등하며, 거기에는 차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이 가르침은 단지 깨달음의 언어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세계가 처한 위기 앞에서 더욱 절실한 경종이 된다.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과 기아
21세기에도 전쟁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총탄은 무고한 이들을 쓰러뜨리고, 굶주림은 어린아이의 생명을 앗아간다. 영토분쟁, 이념과 종교의 대립, 경제적 이해관계 등으로 사람은 사람을 죽이고, 피 흘린 자리에 무수한 생명은 쓰러져간다.
그러나 무아의 눈으로 본다면, 적과 아군을 가르는 경계 또한 허망하다. 그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보다 덜 소중하지 않다. "모든 생명은 등가다”라는 자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당연시하거나 외면할 때, 결국 스스로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이다. 그 아이의 굶주림은 내 영혼의 굶주림이고, 그 어머니의 눈물은 내 마음의 눈물이다.
환경파괴와 보이지 않는 죽음
전쟁만이 아니다. 환경파괴라는 이름 없는 전쟁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거대한 공장의 연기와 끝없이 버려지는 플라스틱과 산업 폐기물들이 하늘과 바다와 대지를 질식시킨다. 사라지는 숲은 우리의 폐와 같고, 죽어가는 바다는 우리의 혈관과도 같다.
인간이 자연을 소외시키는 순간, 스스로의 근원을 잘라내는 일이 되고 만다. 자연은 타자가 아니다. 숲과 강, 바다와 대지와 바람은 곧 ‘나’이며,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다.
무아, '나'를 비운 그 자리
무아는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나만 소중하고, 나의 집단만 중요하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생명의 등가성을 자각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으며, 다른 생명을 자신과 똑같은 생명의 벗으로 여길 수 있다.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삶을 지탱하는 공존의 터전으로 바라볼 수 있다.
굶주리는 아이 앞에서 무심할 수 없고, 전쟁의 참상 앞에서 침묵할 수 없으며, 오염된 땅과 강을 보며 방관할 수 없는 마음, 이것이 바로 무아 적 자각의 열매이다.
생명은 서로 기대어 살고,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어느 한 생명의 파괴는 결국 모든 생명의 상실로 이어진다.
오늘의 세계는 위기의 언덕에 서 있다. 그러나 이 위기야말로 무아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임을 말해준다. "모든 생명은 등가(等價)다.” 이 단순한 진리를 각인하는 순간, 인간은 자기중심적 오만에서 벗어나 생명 존중의 지혜로 나아갈 수 있다.
전쟁을 멈추고, 굶주림을 치유하며, 환경을 회복시키는 길은 거창한 이상이 아니다.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여기는 눈에서 시작된다.
지금 여기에서 무아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한 송이 꽃, 한 마리 새, 한 아이의 웃음이 모두 등가 (等價)의 빛을 품고 있음을. 그 빛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의 삶 또한 지혜와 자유로 빛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