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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燈(등)-농협의 주인은 누구인가
"머슴이 되겠다던 자, 주인 행세하는 현실”
영암일보입력 : 2025. 11. 06(목)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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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호 영암일보 대표이사/법학박사
“머슴이 되겠다”며 표를 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그 현장이 바로 농협이다.
농협은 전국 1,100여 개 단위조합과 중앙회, 경제·금융지주로 이루어진 거대한 협동조합이다. 본래 농민의 자조(自助)와 협동 정신을 상징했지만, 요즘은 각종 비리와 금권선거로 그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중앙회장의 금품수수 의혹과 단위농협의 비리, 부실 대출 문제가 잇따라 드러나며 국민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의 병”
최근 경찰은 농협중앙회장이 특정 용역업체로부터 1억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한 지방 조합장은 자신의 땅을 직원에게 관리하게 하거나, 선거 때 조합원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내부 비리를 제보한 직원이 보복성 인사를 당했다는 판결까지 나왔다.
2020년 이후 징계를 받은 조합장이 60여 명이지만, 절반은 단순한 ‘견책’에 그쳤다. 횡령, 성희롱, 불법 채용 같은 중대한 비위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졌다. 내부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농민의 협동조합”이 아니라 “조합장의 사조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커지는 금융 부실, 위험한 경고음
올해 6월 기준 농·축협의 상호금융 연체액은 무려 18조 원에 달한다. 주된 원인은 부동산 개발 사업(PF) 대출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 연체율이 2021년 1.2%에서 올해 19%로 급등했고, 일부 농촌 지역은 30%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일부 농협은 수백억 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임직원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실적보다 인맥과 보은이 앞서는 도덕적 해이의 단면이다. 담보가치를 부풀리거나, 명의만 빌린 대출, 실질 담보 없는 대출이 버젓이 이뤄졌지만 중앙회는 사실상 방관했다. 그 결과, 부실의 부담은 결국 조합원과 농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조합원 중심’에서 ‘조합장 중심’으로
현행 제도에 따르면 단위농협 조합장은 조합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겉보기엔 민주적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조합원 수천 명을 상대로 한 선거는 돈이 많이 든다. 일부 지역에서는 선거 비용으로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의 돈이 오간다는 말이 돌고 있다.
이렇게 당선된 조합장은 인사권과 자금 배분권을 이용해 인사·용역·거래를 통해 비용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조합장은 지역의 군주처럼 군림하고, 감시기구는 형식에 그친다. 내부 제보자는 인사 불이익을 받고, 조합원은 침묵한다. 협동조합의 정신은 사라지고 ‘권력의 사유화’만 남을 것이다.

이제는 정부의 실질적 사정(査正)과 개혁이 필요하다
농협은 정부의 감독을 받는 특수법인이지만, 감사 기능이 농림축산식품부·금융감독원·감사원 등으로 나뉘어 제도적 통제가 약하다. 내부 자정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제는 범정부 차원의 전면 사정과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감사·감독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 농협 중앙회 및 각 지주의 감사 기능을 감사원 직속 특별감사팀으로 통합하고, 외부 회계법인의 의무 감사를 도입해야 한다. 조합 회계는 조합원이 직접 열람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조합장 선거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금권선거를 막기 위해 선거비용 한도를 낮추고, 단계적으로 공영선거제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인사·대출의 투명성 강화. 조합장과 임원 친인척의 인사·대출에는 이해충돌방지법을 적용하고, AI 대출 심사 시스템으로 청탁 개입 여지를 없애야 한다.
넷째, 중앙회 권한의 분산. 중앙회장의 권한을 줄이고, 조합 대표자회의 권한을 높여야 한다. 중앙회장 선출 방식도 간선제에서 직선제나 조합원 투표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다섯째, 공익 투명성 강화. 농협의 유통·경제·공제사업 자료를 공개하고, 부패 조합에는 정부 보조금과 정책자금 지원을 제한해야 한다.

농협 개혁은 농촌의 생존과 직결된다
농협의 개혁은 단순한 조직 정비가 아니라 농촌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정부는 조속히 대통령 직속 ‘농협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3년 단위의 범정부 개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농협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다. 농민의 땀과 신뢰가 쌓인 공동체의 자산이다. 그 신뢰가 무너진다면 농촌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린다.
“머슴이 되겠다”며 표를 구하던 자들이 주인 행세하며 농민의 피와 땀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 아닌 투명성과 공정의 회복이다.
농협이 진정으로 ‘농민의 농협’으로 거듭날 때, 우리 농업의 희망도 다시 싹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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