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인간의 본성은 고칠 수 없는가?-순자
재미있는 철학이야기 제64화
영암일보입력 : 2025. 11. 07(금) 09:48

▲강성률 철학박사
맹자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던 순자(荀子, 기원전 315년~236년)는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유학자이다. 맹자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에 입각하여 덕치(德治)주의를 주장했다면, 그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악하다’는 성악설에 근거하여 예치(禮治)주의를 들고 나왔다.
순자는 어려서부터 고향 동네의 서당에서 공부하였는데, 열다섯 살쯤에는 그의 재능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는 제나라의 서울 직하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제주(祭主)라고 하는 고위 벼슬을 10년 동안 세 번씩이나 지냈다. 또 언젠가는 재상인 춘신군에 의해 난릉 지방의 현령(縣令)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춘신군 앞에서 자신을 모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직책을 버리고 조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춘신군은 다시 그를 모시고자 하였다. 이에 순자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초청을 거절하였다.
“저 보배로운 주옥이여, 아름답기도 하여라! 아! 그러나 목에 걸 줄을 모르는도다. 곁에 있는 천하일색의 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엉뚱한 추녀 요부의 치마 밑을 후비는도다. 앞 못 보는 눈은 마땅히 밝혀줘야 하고, 어두운 귀는 항상 뚫어줘야 하나니 아, 하늘이여! 어찌 당신은 이런 것마저 분명히 하지 못하시나이까?”
춘신군은 화가 잔뜩 났다. 하지만 순자는 당시 유명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순자는 다시 난릉 지방으로 돌아가 현령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춘신군은 복병에 의해 살해되었고, 순자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후 순자는 난릉에 정착하여 살다가 죽어 그 곳에 묻혔다.
순자에 의하면,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그 본성이 악하다.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고, 남을 시기하며, 귀에 아름다운 소리나 눈에 보기 좋은 색채를 좋아한다. 학문을 하는 것은 선천적 본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후천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다. 예의범절이라는 것도 높은 도덕성을 지닌 성인(聖人)이 만들어낸 것으로서, 학문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이다. 만일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하면 어째서 성왕(聖王)이 나타날 필요가 있으며, 왜 예의가 필요할 것인가?
이처럼 인간의 본성이 모두 악하긴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성인과 도적이 갈라지고, 군자와 소인이 구별된다. 성인은 스스로 노력하여 그 본성을 선하게 한 경우이고, 도둑놈이나 소인들은 타고난 (악한) 본성에 자신을 내맡겨버림으로써 눈앞의 이익을 탐내게 된 경우이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나무는 도지개(뒤틀린 활을 바로잡기 위한 틀)에 넣거나 불에 쬐어야 바로잡을 수 있고 무딘 칼은 숫돌에 갈아야 날이 서듯이, 사람의 악한 본성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감화를 받아야 바로잡히고, 예의가 있어야 안정된다.”
물론 맹자가 말하는 본성이란 인간의 ‘이성’을 가리키는 데 반하여, 순자가 말하는 본성이란 인간의 저급한 ‘본능’과 ‘욕망’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맹자가 ‘타고난 이성’을 잘 보존하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순자는 ‘타고난 악의 본성’을 고치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맹자의 성선설에는 순진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 반해, 오히려 순자가 보다 냉철한 눈으로 인간의 깊은 바닥을 통찰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도처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악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순자는 어려서부터 고향 동네의 서당에서 공부하였는데, 열다섯 살쯤에는 그의 재능을 주위로부터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는 제나라의 서울 직하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제주(祭主)라고 하는 고위 벼슬을 10년 동안 세 번씩이나 지냈다. 또 언젠가는 재상인 춘신군에 의해 난릉 지방의 현령(縣令)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춘신군 앞에서 자신을 모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직책을 버리고 조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춘신군은 다시 그를 모시고자 하였다. 이에 순자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 초청을 거절하였다.
“저 보배로운 주옥이여, 아름답기도 하여라! 아! 그러나 목에 걸 줄을 모르는도다. 곁에 있는 천하일색의 미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엉뚱한 추녀 요부의 치마 밑을 후비는도다. 앞 못 보는 눈은 마땅히 밝혀줘야 하고, 어두운 귀는 항상 뚫어줘야 하나니 아, 하늘이여! 어찌 당신은 이런 것마저 분명히 하지 못하시나이까?”
춘신군은 화가 잔뜩 났다. 하지만 순자는 당시 유명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순자는 다시 난릉 지방으로 돌아가 현령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춘신군은 복병에 의해 살해되었고, 순자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후 순자는 난릉에 정착하여 살다가 죽어 그 곳에 묻혔다.
순자에 의하면, 사람은 타고날 때부터 그 본성이 악하다.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하고, 남을 시기하며, 귀에 아름다운 소리나 눈에 보기 좋은 색채를 좋아한다. 학문을 하는 것은 선천적 본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후천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다. 예의범절이라는 것도 높은 도덕성을 지닌 성인(聖人)이 만들어낸 것으로서, 학문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이다. 만일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하면 어째서 성왕(聖王)이 나타날 필요가 있으며, 왜 예의가 필요할 것인가?
이처럼 인간의 본성이 모두 악하긴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성인과 도적이 갈라지고, 군자와 소인이 구별된다. 성인은 스스로 노력하여 그 본성을 선하게 한 경우이고, 도둑놈이나 소인들은 타고난 (악한) 본성에 자신을 내맡겨버림으로써 눈앞의 이익을 탐내게 된 경우이다. 그러므로 “구부러진 나무는 도지개(뒤틀린 활을 바로잡기 위한 틀)에 넣거나 불에 쬐어야 바로잡을 수 있고 무딘 칼은 숫돌에 갈아야 날이 서듯이, 사람의 악한 본성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감화를 받아야 바로잡히고, 예의가 있어야 안정된다.”
물론 맹자가 말하는 본성이란 인간의 ‘이성’을 가리키는 데 반하여, 순자가 말하는 본성이란 인간의 저급한 ‘본능’과 ‘욕망’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맹자가 ‘타고난 이성’을 잘 보존하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 반면, 순자는 ‘타고난 악의 본성’을 고치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맹자의 성선설에는 순진한 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 반해, 오히려 순자가 보다 냉철한 눈으로 인간의 깊은 바닥을 통찰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도처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악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렇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