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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의학에서 철학에로-야스퍼스(1)
재미있는 철학이야기 제73화
영암일보입력 : 2026. 03. 06(금)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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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철학박사
칼 야스퍼스는 독일의 작은 도시 울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장 등을 역임한 교양인이었고, 농촌 출신의 어머니는 인자하고 성실한 신교도였다. 부모가 아들에게 요구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단할 것, 그리고 맹목적인 복종은 오히려 악이라는 것’ 등이었다. 강제적인 명령이나 매질은 한 번도 없었다. 야스퍼스 가정 교육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적인 것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결과로 야스퍼스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김나지움(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야스퍼스는 감기를 이유로 체육 시간에 윗옷 벗는 일을 거부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교장까지 개입하는 등 사건이 크게 번지자,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해야만 했다. 당시 학교에는 세 개의 학생 조직이 있었다. 이 가운데 야스퍼스의 경우, 지체 높은 집 학생들이 속해 있는 조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요량으로 사냥에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몸이 약한 야스퍼스가 사냥 놀이를 오래도록 이어갈 수는 없었다. 결국 집안에서 독서에 몰두하였는데, 특히 고독한 철학자 스피노자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야스퍼스의 반항 정신은 졸업을 앞둔 사은회에서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교장이 라틴어로 답사를 하자,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는 기만에 해당한다.”고 불평을 한 것이다. 이에 교장은“너는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어!”라고 비난하며, 그를 퇴장시켜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김나지움을 졸업하였으나 기관지확장증이라고 하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만다. 이 때문에 야스퍼스는 하이델베르크(독일 남부의 대학 도시)에 가 요양 겸 강의를 듣는데, 자기 나름의 의학적 처방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야스퍼스는 원래의 전공인 법률에서 의학으로 진로를 바꾼다. 의사 예비시험과 국가시험에 잇따라 합격한 그는 곧이어 실습을 마치고, 개업의사의 자격증까지 따기에 이른다.

야스퍼스는 동기생인 유태인 학생을 통하여 4년 연상인 그의 누이를 만나 결혼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연구하는 것뿐이라 여겼고,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꼼꼼한 일과표를 짰다. ‘아침 일곱 시 내지 여덟 시에는 일어나 일정한 시간에 식사를 한다. 점심 후에는 편안하게 쉬되, 낮잠은 자지 않는다. 그리고 밤 열시 반에는 잠자리에 든다.'

그는 병이 났을 때나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든 여섯 살의 장수를 누리면서 자신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다.

야스퍼스는 하이델베르크 정신의학 교실에 잠시 머물렀다. 그 후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실존 철학자인 막스 베버를 만났고, 그의 중개에 힘입어 철학부에 들어간다. 그런데 리케르트는 철학자로서의 베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야스퍼스는“당신이야말로 베버의 주석(註釋)에나 나올 만한 인물로서 결코 후대에 이름을 남길 수 없을 것이오.”라고 쏘아붙였다. 이 일로 인하여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돌리고 만다.

하지만 4년 후, 야스퍼스는 리케르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학과의 정원 외 교수가 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철학 제2강좌의 주임교수가 되어 리케르트와 똑같은 지위를 갖게 된다. 이후 야스퍼스의 모든 생활은 사색에 집중된다. 약 10여 년 동안의 연구 끝에 주저(主著)인 『철학』제 3권이 출간되자 그의 명성은 독일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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