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기계적 법 적용은 정의를 훼손하는가, '정인이 사건'과 법왜곡죄의 경고
2023헌마1114 기소유예처분취소소 사건을 중심으로
영암일보입력 : 2026. 03. 06(금) 10:14
가가
▲김경호 변호사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이지,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정인이 사건’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한 결정(2023헌마1114)은, 기계적 법 적용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대한 이정표다.

이 사건에서 검찰과 헌재의 시각차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검찰 결정의 핵심은 단편적이다. 방송이 아동학대처벌법상 ‘피해아동 신원 노출 금지’를 위반했으므로 범죄는 성립하되, 참작할 사정이 있으니 선처(기소유예)하겠다는 시혜적 태도다.

반면 헌재가 이를 취소한 핵심은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다. 해당 방송은 참혹한 학대의 진상을 알리고 수사기관의 미온적 대처를 고발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이는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애초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어간 아이의 멍든 얼굴을 가린다면 진실마저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언론의 공익적 결단을 검찰은 '범죄'로, 헌재는 '정의'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러한 검찰의 법리 오해나 수사 미진이 단순한 실수를 넘어설 때 발생한다. 이번에 통과된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는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검사가 법령이 적용되어서는 안 됨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적용하거나, 마땅히 적용해야 할 조각사유를 의도적으로 외면하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엄벌하는 규정이다.

향후 검사의 위법한 자의적 처분을 막기 위해, 우리는 법왜곡죄 적용의 명확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

첫째, ‘법익형량의 의도적 누락’ 여부다. 형식적 범죄 요건만 따진 채, 사안 이면에 존재하는 압도적 공익(알 권리, 국가기관의 직무유기 고발 등)을 수사 기록에서 고의로 배척했는지 객관적 서류로 입증해야 한다.

둘째, ‘판례와 사회상규에 대한 합리적 검토의 결여’다. 피의자가 주장하는 정당행위의 근거(시의성, 다른 대체 수단의 부재 등)를 검사가 조사조차 하지 않거나, 기존의 확립된 대법원·헌재의 법리를 명백히 거스르면서까지 기소(또는 기소유예)를 강행했다면, 이는 합리적 재량의 범위를 이탈한 ‘왜곡’으로 간주해야 한다.

권력의 입맛이나 행정 편의주의에 빠져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는 기소 독점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검사의 펜 끝이 진실의 맥락을 향하지 않고 법조문의 껍데기만 핥는다면, 그 펜은 결국 법왜곡죄라는 심판의 칼날이 되어 그들 자신을 찌를 것이다.




[약력]
육군대학 법무실장
군사법 교관
합동군사대학교 법무실장
국방부 외부 인권교수
합동군사대학교 명예교수

실시간뉴스

많이 본 뉴스

기사 목록

영암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