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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血의 누淚
내 얼굴의 상처 - 2부
영암일보입력 : 2026. 05. 15(금)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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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구 문인
그녀의 나이는 51세. 혼자 사는 우리 동네 여인들 중에서 가장 젊어. 그녀는 요양보호사로 함평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일주일에 서너 번 출근하고 있어.
지난여름,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차려, 나와 동네 남자들이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밥상머리에 그녀가 살짝 내려간 바지 사이로 커다란 엉덩이가 갈라진 곳을 내비치며 털썩 주저앉더니, 옴마 그놈의 고롱(멀구슬)나무가 엄마나 지붕을 덮어 불던지 못 살 것어라 잘라 불고 싶은디 어짜먼 좋까라, 하며 고개를 뒤로 돌리며 우리를 쳐다보더라고. 그 은근한 눈빛에 밥 먹던 남자들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데 장암아제가 석구 니가 기계톱 있응께 한번 좃아부러라 하여 그 다음날 하루 종일 나무를 베어낸 덕분에 그녀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
일이 끝나고 그녀가 내온 술상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그녀에 대해 알아낸 것은 남매를 낳고 남편의 주사와 바람기 때문에 마흔이 되기 전에 이혼했다는 것. 그러면 지금까지 계속 혼자였냐고 물어보니까 장흥에 있는 자기보다 스무 살이 많은 건축 사장이 월 백만 원씩 부쳐주고 자신이 가끔 그 남자에게 간다고 하였어. 나이 칠십이면 그것도 못할 것인데 참 고마운 사람 아니냐고 했더니 그런 소릴 하들 말어 하면서 뭔 놈의 양기에 좋다는 약이나 고 낸 것은 있는 대로 처먹어서 밤새 자신을 잠 못 자게 한다고 그러더라고.
그 후, 그녀는 가끔 해질녘이면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들고 나를 찾아왔어. 그리고 마루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과 그 주위의 구름이 해에 물들어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곤 했지. 그녀는 어딘가 늘 아픈 듯한 표정을 보여주곤 했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한테는 신기神氣가 있대. 그런데 평생 당골네로 살기 싫어 받아들이지 않고 사니까 그런다는구만. 그녀는 우리 집 마루를 그렇게 좋아했어. 동백나무 사이로 해가 지고 잠깐 머물고 있는 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거야. 어스름이 몰려오면 무슨 볼 일이 있는 양, 서둘러 자기 집으로 돌아갔지.
아마 낮에도 안개가 드문드문 남아있는 날이었을 거야. 느닷없이 그 한낮에 나를 부르더라고. 읍내에 찻집에 내가 들어가자마자 눈물을 살짝 비치더니 오마 세상에 예수 믿은 놈이 더 염병하드라면서 침을 내게 튀기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어. 새벽에 병원을 가려고 문 열고 밖을 보니 안개가 보통이 아니어서 자신과 교대할 근무자에게 안개가 너무 끼어 밤 근무에 가면 어쩌겠냐고 전화를 했더니 꼬라지를 내더래. 오늘 즈그 남편과 서울에 있는 아들 새끼 보러 가야 한다고. 쓰발, 십 년째 공무원 시험 본다고 고시원에 박혀있는 놈 반찬 가지고 간다냐? 할 수 없이 거의 몇 미터 보이지도 않는 안개 속을 헤치며 자신의 낡은 모닝을 몰고 서영암 톨게이트에 접어드는데 뭔가 쿵 하고 받히는 느낌이 오더라는 거야. 나가봤더니 검은색 차가 멈춰 있는 모습이 보여 살펴보는데 한 중년 남자가 차에서 욕지거리를 하면서 내리더니 나중에는 여자가 집에나 퍼 있어야지 이 안개 속에 뭐 하러 차를 몰고 다니냐며 손가락질을 하더래. 그래도 자기 잘못이기에 출근하느라 그랬다면서 미안하다 하고 차를 살펴보는데 뒤의 범퍼가 약간 찌그러져 있더래. 그런데 차가 BMW였다나? 그리고 명함을 주는데 어디 교회 목사라고 쓰여 있었대. 무슨 놈의 목사나 되는 자가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즈그 아버지 예수가 듣고 있으면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는 구만. 시간이 없으니까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비용을 이야기하면 처리하겠다고 달래서 간신히 헤어지고 차를 모는데 그렇게 서운하더래. 그래서 그냥 차를 돌려 집으로 와 버렸대. 근무자에게서 전화가 수십 통이 와도 받지도 못하고.
그런데 아까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범퍼를 교환하는데 200만원이라고 하더라나? 그것은 그럭저럭 이해를 하겠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뒷자석에 앉아있던 자기 마누라가 충격에 목이 꺾여 병원에 입원해 있다나? 분명 그 당시에 그 놈 마누라가 차에서 나온 적도 없었고 뒷자석에 움직임이나 말소리도 없었다는데. 진한 썬팅과 자신의 부주의를 그놈이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뿐인데 미치겠다는 거야. 그리고 마누라 병원비용으로 300백만 원을 더 주라고 하더라는 거야.
그녀가 왔어. 그 후 통 연락도 없던 그녀가. 그것도 한 삼일 비가 는개로 내린 후. 아침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서 무화과 잎이 거의 다 떨어진 다음날 해질녘. 예전처럼 봉지에 소주와 안주를 담아가지고. 마루에서 보는 해는 선명하고 푸른 하늘과 맞닿은 은적산 위에서 약간의 노란 빛을 머금고 빨갛게 머물러 있었어.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한 번에 들이켜고 나서 그냥 신을 받아들일까 봐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군. 그러더니 오빠가 나를 받아주면 같이 살 수도 있는데 하며 웃었어. 미쳤니?하며 어깨를 툭 치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너에게 돈을 보내준 남자한테 가라고 했더니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 남자 기가 다 빠져 병원에 있는 중이고 돈도 안 보낸 지 두 달이 됐어 하는 거야.
이번에는 어느 암자에 있는 여승 주지가 자기를 죽인다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그제 집에서 쉬고 있는데 군청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대. 농업기술센터 근처에서 항공레저 축제가 있대. 그래서 그 내용의 깃발을 군데군데 전봇대에 꽂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비가 와 공익근무요원들이 몇 명 나오지 않아 도와주라는 연락이었대. 아픈 몸을 이끌고 우비를 단단히 입고서 군청 트럭에 올라 그 작업을 하러 간 곳이 하필 서영암 톨게이트 쪽이었다나?
전봇대에 깃발을 꽂으려면 트럭 짐칸 위에 의자를 놓아 발꿈치를 들고 해야 겨우 할 수 있는 작업이었는데 거기에 이미 다른 깃발들이 꽂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대. 오래 된 깃발은 잘 빠지지 않아 집게를 이용해 뽑는데,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아 힘껏 잡아당기면 깃발이 포물선을 그리며 뒤쪽으로 날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대. 그런데 그때 하필 AUDI 검은 승용차가 지나가다가 그 깃발에 맞은 거야. 비는 추적추적 오고 빨리 작업은 끝내야 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거지.
승용차가 멈추며 내린 사람은 의외로 여승이었대. 여승은 말없이 트렁크를 열어 먼지털이를 꺼내더니 차 앞문을 열고 거기에 올라서서 차 지붕을 닦더라는 거야. 혹시 깃발에 상처 난 곳을 찾으려고. 그러면서 이 차 비싸요 견적 깨나 나올 거요 하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스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자 갑자기 구역질이 나더라는 거야. 여승은 계속 지붕을 닦으면서 눈을 부라리며 흠집을 찾더니 여기 있네 하더니 손톱으로 가리켰대. 가서 보니 에구머니나 썩은 들깨 모양의 흔적이 아슴푸레 찍혀 있었대. 그냥 갈 줄 알았던 여승이 그러더래. 도색을 해야 하니까 정비소에 가면 연락할 겁니다. 주는 명함을 보고서야 어느 암자의 주지라는 걸 알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더라는 거야. 어찌하여 그 조그만 흠집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저런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포교하며 인자한 웃음을 지을까 하며.
다음날 여승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도색 비용이 오백만 원이라나? 그때는 보지 못했는데 뒷문 손잡이 파인 곳에 긁힌 자국이 5cm나 또 있더라는 거야.
무슨 놈의 세상이 이래? 아마 내 속에 있는 신이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아니겠지. 이건 신들의 농간이라기보다 인간이란 것들이 탈을 쓰고 하는 짓이야. 이제 내 수중에 돈도 없어. 살아야 하는데 죽고 싶어. 나 함평의 요양병원 옆으로 이사 갈거야. 이제는 내 차도 보기 싫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보이더니 어느새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어. 그때 해가 막 은적산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지. 그녀의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어찌나 맑을까 하는 느낌이 들면서 그 눈물 속에 붉은 해와 붉은 노을이 한가득 아롱져 있었어.
*덧붙임; 불행은 쓰나미가 되어 온다고 했던가. 이 글을 쓰고 몇 달 뒤, 그녀의 소식을 들었는데 유방암 4기라고 했다. 알음으로 병원을 찾아갔더니 항암치료로 머리칼이 하나도 없고 몰골은 너무 앙상하여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제 자기를 볼 수 없을 거라며 어느 산골에 홀로 사는 아는 언니 집으로 피접을 갈 거라고 했다.

- 책 <늙은 시인들의 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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