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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떠나가는 것들
고주孤酒- 3부
영암일보입력 : 2026. 10. 01(목)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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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석구 문인>
어제 우리 집에서 7km 정도 떨어진,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외갓집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해서 차를 몰았다. 외갓집 막둥이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진 어언 1년, 이제는 어르신들은 다 돌아가시고 그 후 외사촌 형님들과 누님들이 한번 나를 불러 점심을 먹은 기억이 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외사촌 형님이 연애편지를 쓰던 사랑채는 이미 흔적도 없고, 그 큰 다섯 칸짜리 본체에 7개나 붙어있는 여닫이문들은 창호지가 거의 뜯겨나가고 앞 들판을 바라보며 앉아있던 마루는 군데군데 나무판들이 썩어서 내려앉아 있었고, 처마를 지탱하던 서까래는 몇 군데 건너서 조금씩 주저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 가서, 사랑채에서 한약방을 하던 외할아버지께서 식사를 하시려고 본체에 오실 때 내시던 큰기침 소리와 외할머니께서 내 옷을 벗기고 이를 잡으며 해맑게 웃던 모습, 숙부들께서 한국전쟁 때 다 돌아가셔서 세 분의 외숙모님들만 부지런히 텃밭의 풀을 매는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아련하게 지금도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가깝지만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곳. 어머니가 연결해 주던, 외갓집과 그 친척들을 점점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내 손등이 이제 저 시드는 깻잎, 고추잎, 감잎을 닮아가고 있다. 이 터에 자리 잡고 10년을 버티는 동안 나는 동창이 밝아지면 일어나 집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작물들의 성장과 상태를 확인하며 새벽 공기를 들어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오늘의 공기는 11월의 중순이 되자, 차가운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밤새 잠을 자고 나면 요새는 허리가 굳어, 걸으면서 허리를 폈다가 두드려야 한결 걷기가 편해진다. 나이 속으로 점점 굳어지는 손이나 다리, 목이나 허리의 아픔이 쌓이고 있다. 여기에 처음 정착을 할 때만 해도 한나절 동안 잡초를 메고, 가져다 놓은 산더미 같은 거름을 오로지 삽으로 퍼서 밭에 뿌리면서도 허리 한 번 곧추세우면 거뜬했던 몸도 이제는 잡초와 거름만 봐도 아프게 느껴지는 몸뚱이가 되었다.
지금은 좋아했던 탁구나 당구를 한 지가 여기 와서 몇 해 전인지. 좋아했던 영화를 본 지가 언제였는지. 몸이 뿌듯하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뒷산을 산책하고는 했는데 그것을 그만둔지가 언제였는지. 아는 먼 친척의 노래방을 간 지가 언제였는지. 1년에 계절마다 올랐던 월출산의 산행을 한 지가 언제였는지.
처음 여기 와서 여기저기 집 곳곳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흉물로 버티고 있던 집 고치는 일을 몇 달간 몸이 부서지도록 하고도 이제 겨우 살만해진 집을 보며 월출산을 단숨에 올랐던 기억이 지금은 새삼스럽다. 지금은 시멘트로 발라 놓은 토방이 여기저기 갈라지고 있는데 식은 열정 때문인지 방치만 하고 있다.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창호문을 바르는 일. 창고에 아무렇게나 쌓인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 베어놓은 나무들을 집안으로 옮기는 일. 굴거리잎, 감잎, 사과나무 잎들이 바람에 휩쓸리며 온 마당과 뒤란에 굴러다니는데도 쳐다만 보고 있다.
오늘, 보건소에서 코로나와 독감 예방주사를 동시에 맞았다. 석 달 전, 그동안 나에게는 오지 않았던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그런데 그 후유증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가래를 한 달 동안 입으로 뱉어내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코로나 후유증으로 죽는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이러한 삶의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나를 떠나보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저기 보이는 월출산이나 300년을 견뎌온 동백나무나 매실나무, 내가 날마다 잠자리를 같이 하고있는 나의 집, 저기 하늘거리는 화송댁의 대나무들, 텃밭 주변에 나를 바라보며 끝끝내 자라고 있는 온갖 잡초들이 이제 가야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떠나감으로써 그들을 떠나보내는 나.
그리고 내가 눈물을 흘렸던 적이 언제였던가. 누구를 떠나보내고 가슴에 상처를 받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저 넓은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며 내가 원하던 곳에 취직했을 때 흘렸던 젊은 날의 그 많은 눈물이 언제부터인가 마르고 말라버렸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까. 사랑은 내가 아직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터인가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는 생각이 드는 그 말.
사랑.


- 책 <늙은 시인들의 동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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